2026년 올해는 기독교복음선교회 설립자인 정명석 목사가 베트남전쟁에 파병된 지 60주년이 되는 해다. 정 목사는 젊은 날 목숨을 걸고 국가에 충성하며 36개월의 군 복무 기간 대부분을 전쟁터에서 보냈다. 생사를 장담할 수 없는 전쟁의 한복판에서 수많은 작전에 참여하며 아군은 물론 적군의 생명까지도 살려주면서 하나님의 생명 사랑의 정신을 실천한 그의 행적을 6회에 걸쳐 조명한다./ 편집자주 |
한국군은 베트남의 자유 수호를 위해 파병되었다. 베트콩이나 북베트남 정규군을 많이 죽여 전공을 세우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양민을 괴롭히고 남베트남을 공산화하려는 세력을 물리치기 위해 참전했다. 하지만 막상 전투에 임하면 자신이 죽지 않기 위해 적을 죽여야만 했다.
물론 적을 죽이지 않고 포로로 생포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것은 적을 사살하는 것보다 몇 배나 더 어려운 일이었다. 적을 생포하려면 그만큼 더 큰 위험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나뿐인 자신의 목숨을 걸고 일부러 적을 생포하려는 사람이 과연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참혹한 전쟁터에서도 자신의 생명이 귀중한 것처럼 적의 목숨도 귀하다는 생각으로, 온갖 어려움과 위험을 감수하며 하나님의 뜻대로 적의 생명까지 사랑한 영웅이 있었다. 정명석 목사, 그는 수백 번의 작전에서 부대를 승리로 이끌었으며 위험한 상황에서도 적군을 죽이지 않고 자유의 품으로 되돌려 보내려는 사랑의 마음으로 10명이 넘는 포로를 생포했다.
정 목사는 생사가 오가는 전쟁터에서도 하나님의 뜻을 목숨 걸고 실천했다. 자신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적을 죽일 수밖에 없는 전쟁터에서 그는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적군을 살려주며, 평화의 전쟁을 했다.
1966년 8월 30일 백마부대 28연대 1대대 3중대원으로 베트남에 파병된 정 목사는 1967년 1월 21일부터 2월 7일까지 마두 1호1)작전에 투입되었다. 이 작전은 베트남 중부 해안지역의 뚜이호아 서남쪽에 위치한 차이산과 사레오산 일대에서 수색과 매복을 반복하며 18일간 진행되었다. 사레오산은 바위와 정글이 우거진 험준한 산으로 무기가 열세했던 베트콩은 자신들의 은거지에 한국군이 도달하기 전에 미리 산 너머로 도망가는 전술로 대응했다.
작전 5일째, 정 목사가 속한 1소대 2분대는 저녁이 가까워지자 주간 수색작전을 중단하고 산 능선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100여 미터 아래 계곡을 지나가는 10여 명의 적을 발견하고 집중사격을 실시했다. 이때도 정 목사는 적들의 생명을 위해 기도하면서 직접 조준사격하지 않고, 적군의 머리 위로 총을 쏘았다.
한국군의 공격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베트콩들은 많은 사상자가 발생한 듯 여기저기서 신음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나 곧 밤이 되어 한국군은 사격을 중지했고, 이튿날 날이 밝는 대로 전투 현장을 확인하라는 소대장의 지시를 받았다.
전투가 끝난 후 전장을 확인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었다. 부상당한 적군이 죽은 척 있다가 수색 나온 한국군에게 사격을 가하기도 하고, 한국군이 올 것을 예측해 부비트랩2)을 설치해 놓기도 해 피해를 입은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누구나 전장 확인 임무를 맡는 것을 꺼렸는데, 2분대 대부분의 병사들이 임무를 기피하자 분대장은 특별히 정 목사(당시 일병)와 유근태 상병을 지명해 수색하게 했다.3)
두 사람은 수목이 우거진 정글을 헤치며 한참을 이동한 끝에 베트콩들이 전날 한국군의 사격으로 피해를 입었던 현장에 도착했다. 그런데 그곳에서 두 사람은 예상치 못했던 뜻밖의 위험한 상황에 맞닥뜨리게 되었다.

다리에 총상을 입은 베트콩이 나무 뒤에서 총을 겨누며 한국군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앞장섰던 유근태 상병은 바로 눈 앞에서 적이 살기 어린 눈으로 총부리를 겨누고 있는 것을 보고 너무 놀라서 기절해 쓰러졌다. 뒤따르던 정 목사 역시 3m 앞의 나무 뒤에서 자신을 향해 총을 겨누고 있는 적군을 보고 순간 몸이 얼어붙었다.
죽음을 앞에 두고 몸이 굳어 움직일 수 없는 상태에서‘하나님’, ‘예수님’만 부르고 있는 그에게 그때“사랑하라∼!”는 하나님의 영음이 들려왔다.
목숨이 경각에 달한 극적인 상황에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말씀에 정 목사는 의아심이 들어서 하나님께 되물었지만 다시 들린 음성도“사랑하라∼!”였다.두 번째 하나님의 말씀은 처음보다 다소 급한 목소리였다.
왜 급하게 말씀하셨을까? 잠시도 늦출 수 없는 매우 위급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적군은 단순히 총을 겨누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전날 한국군이 쏜 총탄이 무릎에 박혀 도망갈 수도 없었고, 자신의 동료들은 모두 죽었기에 그 원한이 사무친 상태였다. 핏발 선 눈과 살기 어린 모습에 유근태 상병이 충격을 받아 기절할 정도였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정 목사가 머뭇거리며 지체하면 베트콩이 곧바로 총을 쏠 것을 아시고, 서둘러 말씀하신 것이다.
만약 여느 군인이라면 아무리 하나님의 말씀이라 해도 선뜻 이해하기 어려웠기에, 달리 어찌할 바를 모르고 몸이 굳은 상태에서 총탄을 맞거나, 혹은 정신력이 무척 강한 사람이라면 죽지 않기 위해 요행을 바라며 적을 향해 총을 쏘거나, 바위 밑으로 몸을 날려 위급한 상황을 피하려 했을 것이다.
그러나 정 목사는 죽는 한이 있어도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해야겠다는 신념이 강했다. 15세 때부터 대둔산에서 밤낮으로 기도하며 성경을 수백 번 읽고 하나님의 뜻을 깨달으면서,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는 것이 체질화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극심한 죽음의 공포와 삶에 대한 본능을‘죽으면 죽으리라’는 하나님께 순종하는 정신으로 이겨내고 말씀을 실천했을 때,기적이 일어났다.목숨을 걸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자신의 총을 버리고 적에게 다가가자,적의 얼굴이 순간 고향의 여동생처럼 보였다.적 역시 하나님의 감동을 받아서인지 총을 쏘지 않고,자신에게 다가오는 정 목사를 멍하니 바라보다가 서로 껴안으며 사랑으로 대하게 되었다.4)이렇게 정 목사는 초인적인 정신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해 자신은 물론 동료인 유근태 상병과 적군까지 살게 했다.
사실 위와 같은 상황에서는 그 누가 수색을 갔더라도 살아남기 힘들었을 것이다. 아무리 동작이 민첩하더라도 3m 앞에서 총을 겨누고 있으니 피하기도 어려웠다. 그러니 베테랑인 유근태 상병도 죽음의 공포를 이기지 못하고 기절한 것이다.
더구나 “사랑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을 때, 정 목사 역시 선뜻 이해하기 어려웠다. 적군에게 대항하지 말고 사랑의 마음으로 자신의 총을 내려놓은 채 적에게 무방비 상태로 다가가라고 했을 때, 지구상 그 어떤 군인이 이를 실천할 수 있겠는가! 그가 진정 적군까지 사랑하는 정신을 가지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아무리 하나님의 말씀이라 해도 원수까지 사랑하는 마음이 없었다면 실천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정 목사는 자신을 죽이려는 적군을 오히려 껴안고 사랑의 마음으로 대화할 수 있었던 것이다.

또 하나 놀라운 사실은 정 목사와 베트콩이 총을 내려놓고 서로 감정이 북받쳐 40여 분간 울면서 대화하는 동안, 베트콩이 엉덩이 밑에 깔고 있던 안전핀이 제거된 수류탄이 터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베트콩은 도망갈 수 없었기에 수색하러 오는 한국군을 총으로 쏴 죽여 복수하고, 총알이 다 떨어지면 자신도 죽으려고 안전핀을 뺀 수류탄을 깔고 앉아 있었다.5) 만약에 정 목사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실천하지 않았다면 베트콩의 총에 맞았거나, 운 좋게 총은 피했다 할지라도 베트콩의 수류탄이 터져 3m 가까운 거리에 있던 정 목사와 유 상병은 죽음을 피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생명이 경각에 달한 절체절명의 순간에도 정 목사는 극히 침착하게 하나님을 찾았으며, 말씀대로 행했다. 극적인 상황에서도 자신의 생각을 모두 내려놓고 설령 그때는 이해되지 않더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절대시하며 적군의 목숨까지 귀하게 여기는 진정한 ‘생명 사랑의 정신’을 실천했다. 하나님은 그가 행한 대로 아군과 적군이 모두 사는 생명의 축복을 주신 것이다.
28연대 기동타격중대인 3중대는 1967년 3월경6) 혼바산 중턱의 동굴에 적이 은거하고 있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출동하게 되었다. 이때 민찬기 중대장은 가장 신뢰하는 두 명의 병사를 본대에 앞서 길을 개척하는 첨병으로 세웠는데, 바로 유근태 병장과 정 목사였다.
혼바산은 정 목사가 회고록에서 ‘혼이 빠져나갈 것 같은 악산’이라고 표현했듯이, 바위와 정글이 우거진 험준한 곳이었다. 유 병장과 정 목사는 적군의 공격이 언제 닥칠지 몰라 초긴장한 채, 동료들을 위해 본대에 앞서 위험하고 힘든 첨병 임무를 수행했다. 40℃가 넘는 열대의 무더위 속에서 첨병으로 적의 동태를 살피며 4시간이 넘도록 길을 개척하느라 옷이 땀에 흠뻑 젖어 걷기조차 힘들었지만, 다행히 본대를 동굴 지대까지 무사히 인도했다.

본대가 작전지역에 도착한 후 ‘첨병은 휴식을 취하라’는 중대장의 지시에 따라 동굴 아래로 내려가니 시원한 계곡물이 흐르고 있었다. 정 목사와 유 병장은 물을 마시며 휴식을 취했다.
그러다가 동굴에 적이 없다는 아군들의 이야기가 들려오자 작전이 끝났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그냥 쉬기만 할 것이 아니라 땀에 절은 몸을 계곡물에 씻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두 사람은 번개 목욕을 하게 되었다. 시원한 물에 몸을 씻고 있는데, 갑자기 두 사람의 등 뒤편의 바위가 겹쳐 있는 곳에서 발자국 소리가 들리더니, 순간 총을 장전하고 방아쇠를 당기는 소리가 들려왔다.
두 사람은 무방비 상태에서 적이 총을 겨누고 있다는 생각에 혼비백산했다. 두려움에 몸이 굳은 상태에서 속으로 오직 하나님만 찾았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몇 번이나 방아쇠를 당기는 소리가 들렸음에도 정작 총은 발사되지 않았다. 이어 사람의 말소리인 듯한 소리가 들리다가 잠시 후 인기척이 사라졌다.
두 사람은 후다닥 옷을 입고 주위를 살펴보았으나 아무런 흔적도 찾을 수 없었다. 이에 베트콩이 은신처로 사용하던 동굴의 후문으로 빠져나가면서 자신들을 향해 총을 겨눈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 목사와 유 병장은 정확한 상황은 알 수 없었지만, 위험한 고비에서 생명을 살려 준 하나님께 감사하며 부대로 복귀했다.
그리고 아무리 임무가 끝나 휴식이 주어졌다고 해도 목욕한 것이 꺼림칙해 남들에게 이야기하지 않고 조용히 잠을 자려 했다. 그런데 한밤중에 중대장이 급히 찾는다는 연락을 받고 중대장실로 가보니, 두 명의 베트콩이 중대장 옆에 서 있었다.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이들은 낮에 유 병장과 정 목사가 첨병 임무를 마친 후 잠깐 목욕할 때 총을 쏘려 했던 자들이었다. 그들은 한국군을 보고 두 번, 세 번 계속 방아쇠를 당겼지만 총알이 나가지 않자, 두려운 마음에 자수하러 왔던 것이다.
이들이 굳이 밤중에 자수하러 온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베트콩이 사용하던 총은 AK 소총으로, 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많이 팔린 총으로 알려져 있다. 이 총은 습기, 이물질, 혹한, 혹서 등 어떠한 환경에서도 고장이 거의 없고 성능이 뛰어나 ‘언제, 어디서나 발사되는 총’으로 널리 알려져 있었다. 그런데 숱하게 사격하면서 한 번도 불발이 없었던 총이 그날따라 계속해서 불발되자, 두 명의 베트콩은 심한 전쟁공포증7)에 빠지게 되었다. 자신들이 죽이려던 한국군이 일반 군인과 달리 총을 쏘아도 불발이 될 정도로 신(神)이 함께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이에 ‘도대체 어떤 사람이기에 죽음이 피해 갈까?’ 하는 호기심과 극심한 두려움이 겹쳐 결국 자수한 것이었다.
결국 그들은 한국군에 투항해 전쟁터에서 죽지 않고 자유의 품으로 돌아갔다. 그들을 살게 한 것은 하나님의 표적이었다.정 목사가 수많은 작전에서 목숨을 걸고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니, 하나님은 극적인 죽음의 위기에서 그를 살리시고 그를 죽이려던 베트콩에게도 두려움을 느끼게 하여 자수하도록 감동을 주심으로써 자유의 품으로 오게 하신 것이다.
당시 앞뒤 사정을 모두 들은 민찬기 중대장은 정 목사에게“너는 진정으로 하나님의 사람이다.그렇지 않고서는 사선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100m거리에 있다 할지라도 놈들의 조준에 걸려들면 살기 힘든데,더군다나 바로3~5m거리에서 살았다는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이 보살펴 주신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 사연은 전우양 병장(당시2소대 통신병)등 동료 전우들이 생생히 증언하고 있으며,자수한 베트콩 중 한 명은2019년까지 생존해 자신이 겪었던 일을 지인들에게 이야기했다고 한다.8)
총알이 빗발치는 전쟁터에서 정 목사가 얼마나 용감했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작전이 있다. 정 목사(당시 병장)는 재파월한 지 보름 정도 지난 1968년 3월 5일부터 6일까지 진행된 ‘푸억록(Phuoc Loc) 2호 전투’에 투입되었다. 혼바산과 차이산 사이 푸억록이라는 마을에 밤이면 베트콩들이 내려와 주민들의 재산을 약탈한다는 첩보가 입수되자, 기동타격중대인 3중대 1소대가 급히 출동하게 되었다. 적이 산에서 내려오기 전에 산 밑에 도착해 급속매복으로 적을 격멸하는 작전이었다.

통상 3명이 1개 조로 매복작전을 준비하는데, 1소대 2분대에서는 정 목사가 속한 조가 가장 늦게 도착해 작전을 준비했다. 정 목사가 소대원 중에서 가장 마지막으로 적이 오는 길목에 크레모아9)를 설치하고 아군의 매복 진지로 돌아가기 위해 몸을 일으키는 순간 “꽝!”하고 천둥치는 듯한 폭발음이 들렸다.
정 목사가 땅에 엎드리는 순간, 정 목사 쪽으로 빗발치듯 총알이 쏟아졌다. 베트콩들이 나타나자 작전에 서툰 신병들이 아군이 모두 복귀했는지 제대로 확인하지도 않고 무작정 적을 향해 총을 쏘기 시작한 것이었다. 이때 정 목사가 “나 여기 있다.”고 아무리 소리쳐도 총소리에 묻혀 들리지 않는 듯 아군의 사격은 계속됐다.

정 목사는 워낙 전장에서의 감각이 뛰어나 기민하게 흙이 솟은 조그만 둔덕을 방패 삼아 아군의 총알과 이에 대항하는 적군의 총탄까지 모두 피했다.
잠시 후 한국군이 쏜 조명탄이 터지면서 베트콩들이 모두 소탕된 듯 사격이 멈췄고, 정 목사도 비로소 몸을 일으킬 수 있었다. 여느 군인 같았으면 불과 5m 옆에서 크레모아가 터지고, 아군과 적군의 총탄이 자신을 향해 날아드는 상황에 혼비백산해 몸을 가누기조차 힘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정 목사는 그 와중에도 적진을 살피다가 도망가는 베트콩을 발견했고, 잘 보이지도 않는 밤중에 무려 200m를 쫓아가 끝내 적을 생포했다. 야간에는 언제 어디서 총탄이 날아올지 모르기 때문에 진지를 벗어나 움직이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그럼에도 정 목사는 베트콩을 발견하면 어떻게든 생포해 자유의 품으로 데려오려는 생각으로, 위험한 상황에서도 용감하게 쫓아가 포로로 잡은 것이다.
베트남 전쟁터에서 정 목사처럼 적을 쫓아가 포로로 잡은 경우는 거의 없었다. 더구나 앞이 잘 보이지 않는 밤에 혼자서 적을 추격한다는 것은 아무리 용감한 군인이라도 시도하기 힘든 일이었다. 그는 전과나 훈장을 바라고 굳이 포로를 잡은 것이 아니었다. 적들도 하나님이 창조하신 귀한 생명이기에 전쟁 중에 죽지 않도록 자유의 품으로 데려오려고 목숨을 걸고 생포한 것이다.
이처럼 위험한 상황에서 적군을 포로로 잡은 것이 10명이 넘었지만, 그가 목숨을 걸고 포로를 잡아 오면 지휘관들은 달갑게 여기지 않았다. 당시 소대장이었던 최희남 예비역 대령(당시 중위)은 “정 목사는 늘 위험을 무릅쓰고 적을 생포할 뿐만 아니라, 심지어 포로를 위해 기도를 해주기도 해서 당시에는 이해가 안 되었다.”고 증언했다.
최희남 소대장이“왜 적을 죽이지 않고 굳이 포로로 잡아 왔느냐?”라고 묻자,정 목사는“적을 죽인다고 전투에서 승리하는 것이 아닙니다.적의 생명까지 사랑해 줄 수 있는 마음을 가질 때 진정한 평화가 옵니다.”라고 대답했다.
당시 지휘관들은 왜 적을 죽이라고 했을까?그것은 포로에 대한 인도주의적 대우를 규정한 제네바협약10)에 따라 포로를 감시하면서 아군 부대까지 후송해야 하기 때문이다.계속되는 작전으로 피곤한 상태에서 적을 생포하면 포로를 처리하고 후송하는 일이 쉽지 않으니,차라리 죽이는 것이 낫다고 여기는 것이다.
하지만 정 목사는 달랐다.아군이 힘들거나 피로한 것은 일순간이지만,생명은 한 번 죽으면 끝이기에 그 생명을 귀하게 여기며 적을 생포한 것이다.이러한 정 목사의 행동은 과연 전쟁 원칙에 어긋난 것일까?
2003년 미국은 이라크전쟁에서 42일 만에 승리하고 종전을 선언했다. 하지만 끝난 줄 알았던 전쟁은 이후에도 7년이나 비정규전 형태로 계속되면서 많은 미군이 사망했다. 압도적인 전투력으로 적을 무찔렀는데도 전쟁이 다른 형태로 계속되자, 미국은 베트남전쟁에 이어 이라크전쟁에서도 비슷한 양상이 전개되는 것에 의구심을 품고 군사전문가들로 하여금 전쟁 양상의 변화에 대해 연구하게 했다. 그 결과, 과거의 군사이론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새로운 형태의 전쟁이 도래했음을 알게 되었다.
미 국방대학교 연구결과 보고서(2010) 겉표지(상)와 결론 부분(하)
「미래 분쟁에 대비한 전략적 리더 양성」이라는 미국 국방대 보고서에 따르면“절대적인 힘을 가진 군대는 없으며,승리는 적을 죽인다고 얻는 것이 아니다”라고 분석했다. <victory is not in the killing>이라는 미 국방대 보고서의 결론은 베트남전쟁에서 정 목사가 소대장에게 이야기한 것과 정확히 일치한다.
시대에 따라 전쟁의 양상은 달라지는데, 군사전문가들은 현대의 전쟁을 4세대 전쟁11)이라고 말한다. 즉, 과거에는 적을 많이 죽이면 승리한다고 생각해 많은 병력과 무기를 쏟아부었지만, 현대전에서는 적의 전쟁 수행 의지가 꺾이지 않는 한 아무리 큰 피해를 입혀도 전쟁은 끝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군사전문가들은 베트남전쟁을4세대 전쟁의 대표적인 사례 가운데 하나로 분석한다.세계 최강의 전투력을 가진 미국은 베트남전쟁을 승리하지 못한 전쟁으로 인식하고 있다.전투에서의 승리를 위해 무조건 적을 죽이기보다는,정 목사처럼 최대한 적군을 살려주면서 평화의 전쟁을 해야 궁극적인 승리를 거둘 수 있다는 것이다.
정 목사는 하나님의 생명 사랑의 정신으로 적군을 죽이지 않고 자유의 품으로 되돌려 보내기 위해 포로로 생포했다. 이에 적군인 베트콩들도 마음으로 승복하여 기꺼이 총을 버렸고, 한국군이 완전한 승리를 거둘 수 있도록 했다. 베트남 전쟁터에서 정 목사는 목숨을 걸고 평화의 전쟁을 실천함으로써 아군과 적군 모두가 하나님께 생명의 축복을 받게 한 ‘베트남전의 영웅’이었다.(계속)
1)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에서 ‘용두 1호작전’으로 기록한 적도 있으나, 당시 백마부대 전투상보에는 ‘마두 1호작전’으로 명시되어 있다.
2) 부비트랩(booby trap) : 건드리면 폭발하도록 임시로 만든 간단한 장치의 폭발물.
3) 2분 대원 중에서 정 목사는 어떤 임무나 작전에도 불평불만 하지 않고 늘 순종적이어서 힘든 일은 정 목사가 도맡았다고 당시 같은 분대원이었던 박정배 전우가 증언한 바 있다.
4) 자세한 상황은 정명석 목사의 회고록 『전쟁은 잔인했다. 사랑과 평화다』1권에 나와 있다.
5) 안전핀을 제거한 후 안전손잡이를 엉덩이로 깔고 있었던 것인데, 잠깐이면 몰라도 40여 분 동안 안전손잡이가 눌러진 채로 수류탄이 터지지 않았다는 것은 기적이었다.
6) 전투상보에 작전기간이 기록된 대부대작전과 최희남 소대장의 회고록, 전우들의 증언 등에 따라 추정된 작전 기간이다.
7) 전장에서의 공포증은 특히 심리적으로 죽음에 대한 공포와 불안이 극심한 스트레스를 유발하는데, 전투스트레스가 심하면 정상적인 전투행동을 할 수 없다.
8) 생존한 베트콩을 충남 금산에 있는 진산자연휴양림의 유숭렬 대표가 베트남에서 만났다고 한다.
9) 700개의 쇠구슬이 총알처럼 날아가 살상하는 무기로 살상반경은 50m이며, 폭발 소리가 무척 큼.
10)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국제 협약으로, 전쟁에서의 인도적 대우에 관한 기준을 정립했다. 1949년 제네바Ⅳ협약에서 민간인 보호와 전쟁 포로의 기본적인 권리를 규정하고, 부상자의 보호를 명문화했다.
11) 적의 군대를 직접 파괴하는 대신에 적의 전쟁수행 의지를 파괴하기 위해 정치·경제·사회·군사 등의 모든 가용 네트워크를 사용해 상대국의 정치적 의지에 타격을 가하여 승리를 달성하는 전쟁
기사원문: [섭리뉴스룸] https://cgmnewsroom.com/2026/08/31/vietnamwar_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