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푼칼럼 by 봉국장

봉국장이 들려주는 세푼칼럼! '세푼'짜리 부족한 글 솜씨로나마..... '세'상의 언어로 '푼' 주일말씀을 써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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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내는 사람들'이 하늘 나라 가려면...

나 더러 '주여, 주여'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다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사람이라야 들어간다.

이 말씀에 근거하여, 하늘 나라에 들어 갈 수 있는 조건을 유추하자면,
'주'를 '시인하여 부르는 것(명명,命名)'과 주와 하늘의 '뜻대로 행함' 이 두가지가 아닐까 생각 해 봅니다.

베드로가 예수에 대해서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 시인(명명)한 것에서 제자들에 의한 새로운 시대(신약) 출범이 이뤄지게 되었습니다
스스로 주를 제대로 알아 보고 그에 맞는 이름을 부를 수 있게 된 것이야말로 제자들에 대한 뜨거운 성령 역사의 핵심이 아닐까요?


모르긴 해도 예수께서 '내가 그리스도이며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니 가서 증거하라' 해서 베드로가 증거하기 시작 했다면 오늘 날 우리가 아는 위대한 베드로의 역사는 남아 있을 수 없었을지 모릅니다.


"너는 나를 누구라 보느냐?" 그 질문에 여러분들은 어떤 성령의 감동으로, 어떻게 대답하시겠습니까?

더 나아가, 2천년 전 '주'에 대한 베드로의 고백(명명)이 지금도 과연 통용 될 수 있는지 저는 의문을 가져 봅니다.
어떤 자료에 의하면 근래에 약 200여명이 '그리스도'라고 주장하고 있다는데 과연 하나님의 아들(그리 명명 되는 사람)을 이 시대는 필요로 하고 있는가?

최근 인상 깊게 본 영화 '버닝(이창동 감독 2018년작)'의 감독은 이 시대 '원인도 모르면서 화를 내는 사람들'을 표현하는 것이 영화 제작의 목적 중 하나라는 말을 했습니다.
영화도 등장인물들이 왜 불을 지르는지, 왜 사람을 죽였는지 시원한 답을 못 한채 끝을 맺습니다.

성(性) 대결이 분노의 극단 양상으로 치 닫고 있고, 기사들에 달린 댓글 몇 줄만 봐도 현대는 그야말로 '화 내는 사람들'의 시대란 것을 절감하게 됩니다.
그런데 영화처럼 누구 하나 왜 우리가 화를 내고 있는지, 왜 화가 나는지를 속 시원하게 설명 해 주는 이 없습니다.

이 전 시대 행복한 삶을 위한 전제들이라고 정의했던 여러가지 여건들이 어느 때 보다 잘 갖추어진 것 처럼 보이는 이 때, 그러나 여전히 조금도 더 행복 해 지지 않은 사람들.



정명석 목사께서는 "행복이란 영원히 행복해야 행복 한 것인데 이를 모르고 누구나 그저 자기 '목적과 뜻' 이루는 것에서 행복을 찾으려고 한다.
자기 목적과 뜻으로는 '영원한 희망'을 이룰 수 없고 '영원한 구원역사'가 없다"
고 말씀하셨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뜻을 이룬 삶'이 영원한 행복의 전제이면서 동시에 결론임을 제시하신 것입니다.

자기 뜻 이루는 일 무척이나 힘들고 어려운 일입니다. 하지만 설령 자기 뜻을 이룬다고 해도 이는 ‘자기’로 끝나고 ‘육’으로 끝나고 맙니다.


또 저 마다 자기 목적, 뜻을 이루려니 서로 다른 입장의 사람들 간 갈등이 끊이지 않고 이 갈등이 지속 되다보니 결국 이젠 원인도 알 수 없는 분노가 치밀어 올라오고 있게 된건지도 모르겠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면 ‘자기 뜻’도 이루고 ‘하나님의 뜻’도 이루게 되는데, 그것이 ‘육 평생, 영 영원히’ 남게 되는 것이며 또 사실상 기 뜻 이루는 것 보다 훨씬 쉬운 것임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를 위해 하나님은 자신의 뜻을 시대에 보낸 '구원자'를 통해 말씀하시고 나타내심을 결코 잊어선 안 된다 하셨습니다.

바로 이 부분에서 '자기 인생을 망라'하고 이 '시대를 관통'할 새로운 '테제'(Thesis, 본 칼럼에서는 이를  '증명되어야 할 주장, 명제' 정도의 의미로 사용합니다)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전문가'가 오늘 날 우리 교회들에게 많이 필요한 것입니다.
이를 해 낸다면 그는 베드로와 같은 입장(새로운 역사의 출발점, 혹은 반석)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새 역사는 새로운 테제와 그 테제를 증명하는 과정으로서 새로운 삶의 방식(그 뜻 대로 행하는)을 추구하며 그에 따라 사는 사람들이 늘어남으로써 이루어집니다.
신약이 베드로가 제기한 '테제'와 그를 증명하기 위한 삶의 방식을 사는 '그리스도인'들의 등장으로 열렸듯이 말입니다.

알 수 없는 분노로 불행에 빠진 사람들 앞에 시대에 맞는 새로운 이름으로 주를 '명명(命名)하는 활동'과 그 가르침(뜻)대로 사는 '새로운 생활방식'을 보여 주는 사람들(오직 하늘 뜻 대로 사는 사람들 그래서 영원히 행복한 사람들)이 나타난다면 또 다른 새 역사(하늘 나라에 들어 가는)가 시작된 것이 틀림없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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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18-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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